‘세계일류대학’, ‘연구중심대학’이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 밤늦도록 연구실의 불을 밝히며 연구 주제와 씨름하는 대학원생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을 고단하게 하는 것은 좁고 험한 진리 탐구의 길만은 아니다. 『대학신문』은 대학원생이 느끼는 서울대 대학원의 현황과 어려움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메일을 통해 지난 1일(일)부터 열흘간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에는 대학원생 1,148명이 참여했다. 대학원생 소속 계열은 △인문·사회계 △자연과학계 △공학계 △예체능계 △의학계 △협동과정 △전문대학원으로 분류했으며 설문지 개발은 ‘서울대 대학원생 모임(가칭)’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글: 이정원 기자 poibos85@snu.kr   삽화·그래픽: 김태욱 기자 ktw@snu.kr


대학원, 공부할 만한 공간인가

학부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학문의 길에 뛰어든 대학원생들. 이들은 대학원의 학업환경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래프 1>은 대학원생들에게 수업 내용, 연구시설 등 6가지 학업환경에 관한 만족도를 표시하도록 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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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분석 결과 항목에 따라 만족도에 계열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들은 다른 계열에 비해 연구시설(2.8점)과 연구자료(3.5점) 항목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고 자연과학계열 대학원생들은 수업 내용(3.2점)에 대한 만족도가 다른 계열보다 낮았다.

지난 3월에 입학한 석사 1학기 학생들은 다른 대학원생들에 비해 3개 항목에서 더 후한 점수를 매겼다. 석사 1학기 학생들은 ‘수업 내용’과 ‘학업 지도’, ‘진로 지원’ 항목에서 각각 3.6점, 3.5점, 2.8점을 매겨 3.3점, 3.2점, 2.5점을 매긴 데 그친 선배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줬다.

진로 지원에 대한 만족도 '2.8점'으로 최저

학업환경에 대한 조사항목 중 가장 낮은 만족도를 기록한 것은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한 학교의 지원’이었다. 전문대학원에 재학중인 한 대학원생은 “교수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인문·사회계열의 한 대학원생도 “학부생을 위한 취업 워크샵은 많지만 대학원생이 진로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희망하는 진로 유형은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학생이 차이를 보였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석사를 마친 뒤 취직하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33.8%),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은 26.3%로 뒤를 이었다. 석사졸업 후 해외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응답도 25.3%로 나타났으며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11.8%였다. 박사과정 학생들의 경우 학위취득 후 교수로 임용되고 싶다는 응답(46.4%)과 교수 외의 진로를 희망한다는 응답(42.7%)이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다.

희망 진로는 계열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학위취득 이후의 진로에 대해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은 79.2%가 교수 임용을 희망한 데 비해 공학계열 대학원생은 30.8%만이 교수 임용을 바랐다. 석사졸업 후에도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들은 취직보다 해외 대학원으로 진학하겠다는 비율이 모든 계열 중 가장 높았다(65.2%).

학업 지도, 수업, 행정 등에도 불만 쏟아져

진로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항목에 대한 평균 만족도는 3점을 상회했지만 각 항목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각자 경험하고 있는 문제를 자유롭게 기술하도록 한 ‘자유기술’에 응답한 3백여명의 학생들은 학업 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 불만을 털어놨다.

한 응답자는 “교수님이 다른 업무로 바빠 혼자 논문을 써서 졸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며 학업 지도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사회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연구실에 자리가 부족해 여러명이 한 자리를 써야 한다”며 “정해진 시간이 아닐 때는 도서관 등 이곳저곳을 배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 수업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났다. 자연과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 수업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융합 학문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강의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주제 선정에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공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학교의 무리한 등수 올리기 정책으로 논문 개수를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며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발적인 연구 활동이 장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행정적인 지원 부족과 출산이나 육아를 보조하는 제도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됐다. 협동과정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협동과정의 경우 전담 조교가 없어 기본적인 행정 지원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녀를 기르며 대학원에 다닌다는 한 대학원생은 “국가는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기혼 대학원생들은 아무런 배려를 받지 못한 채 부담을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는 없을까

많은 대학원생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한 부분은 경제적인 여건이었다. ‘등록금 및 장학금’에 대한 만족도는 5점 척도상에서 2.4점에 불과했고 자유기술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그래프 2 참조> 6.8%의 대학원생이 ‘의식주 등 기초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으며 22.0%의 대학원생은 ‘등록금 납부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 ‘등록금 납부는 가능하나 연구 제반비용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한 17.0%의 학생을 더하면 돈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있다고 답한 대학원생이 45.7%에 달한다. 그밖에 ‘학업에는 지장이 없으나 여가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38.7%였으며 ‘학업과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한 학생은 15.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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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및 생활비 절반 스스로 마련해야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등록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물었다.<그래프 3 참조> 분석 결과 평균적인 대학원생 A는 부모님 등 가족의 지원을 통해 등록금의 29.5%를, TA·RA·연구비 등 교내 임금을 통해 28.0%를, 장학금으로 19.7%를, 교외에서 받는 임금을 통해 10.2%를, 대출을 통해 8.7%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의 절반 정도는 교내 임금이나 장학금으로 지원받지만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등록금 외에 생활비나 서적 구입비 등 제반 비용의 조달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학원생들은 평균적으로 생활비의 37.9%를 교내 임금으로 해결하고 가족으로부터 29.7%를 지원받으며, 교외 임금으로 19.6%를, 장학금을 통해 5.2%, 대출로 2.4%를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생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학원생은 “연구실 지원금으로는 등록금도 납부할 수 없지만 평일 9시까지 연구실에 있어야 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원생도 “대학원 진학이 자발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라도 경제적 지원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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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어"

경제적인 여건은 단과대나 각 연구실에 따라 편차가 큰 것으로 보인다. 계열별 분석결과 기초생활이 곤란하거나 등록금 납부가 어렵다고 응답한 비율은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들의 경우 32.2%로 전문대학원(30.9%), 자연과학계(27.8%), 공학계(26.5%), 의학계열 일반대학원(19.7%)보다 높았다. 인문·사회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BK21사업에 해당되지 않는 단과대의 경우 외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수업조교를 해도 월 30만원의 장학금으로 생활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TA나 RA를 통해 임금을 받고 있다고 답한 학생도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54.2%로 자연과학계열(63.0%), 공학계열(58.6%)에 비해 낮았다. TA나 RA를 하더라도 한달에 수령하는 금액이 60만원 이하라고 답한 학생의 비율이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36.1%로 자연과학계열(31.2%), 공학계열(25%)에 비해 전반적인 경제적 여건이 열악함이 드러났다.

한편 실험실 단위로 운영되는 이공계 대학원의 경우 프로젝트의 대가로 지급되는 인건비를 교수에게 반납했다가 돌려받는 관행이 문제로 지적됐다. 자연과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대부분의 실험실에서 재료 구입 등에 쓰는 ‘랩비’ 마련을 위해 인건비를 회수했다가 일정액을 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연구비 운용의 투명성이 떨어지고 학생에게 돌아오는 돈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교수가 랩비 조성 명목으로 인건비를 회수하지만 그 사용처를 학생들이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몇몇 학생들은 “교수가 턱없이 적은 인건비를 돌려주고 나머지를 횡령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학원생의 인권은 잠들어 있다

건강과 시간 활용,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는 학업환경과 경제적 여건만큼이나 대학원생의 학업과 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다. 막연히 열악할 것이라 여겨지면서도 누구도 해결을 위해 나서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 대학원생들은 이에 대한 어려움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몸도 마음도 … 대학원생 건강상태 '비상등'

꾸준히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서도 건강 유지가 중요한 대학원생들에게 스스로를 얼마나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설문 결과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건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 4 참조>

512명(44.9%)의 학생이 자신이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느꼈으며 전체 평점은 5점 척도에서 2.8점으로 보통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오랜 시간 각종 실험 물질에 노출되면서 건강에 악영향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의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책상과 실험실이 분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의 정신적인 건강 상태는 더욱 좋지 않았다.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582명, 51%)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고 느끼고 있으며 이를 평균 점수로 환산하면 2.6점에 그쳤다. 인문·사회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의 상당수가 정서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나 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에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건강 문제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욱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비율이 남학생(40.5%)에 비해 여학생(49.2%)이 높았고, 정신적 건강 역시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남학생(47.1%)보다 여학생(54.7%)이 훨씬 높았다.

과다 업무와 자리 지키기 … 휴식은 사치?

대학원생들은 시간적인 여유 부족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설문 결과 많은 학생들이 연구시간과 휴식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 5 참조>

연구시간 확보에 대한 만족도는 5점 척도에서 평균 3.0점을 기록했으며 연구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한 학생은 37.1%를 차지했다. 연구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은 특히 인문·사회계열(44.8%)과 의학계열 일반대학원(42.4%)에 많았다.

휴식시간에 대한 만족도는 더욱 낮았다. 휴식시간에 대한 만족도는 평균 2.3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으며 휴식시간 부족을 느끼는 학생은 59.4%에 달했다. 휴식시간이 특히 부족한 계열은 의학계열 일반대학원(75.8%)과 자연과학계열(69.7%)이었다. 한 대학원생은 “수면부족과 여가시간 부족으로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회복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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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학업이나 업무, 휴식 등의 시간 활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의학계열 대학원생의 68.2%, 공학계열 대학원생의 51.6%, 자연과학계열 대학원생의 48.6%가 ‘연구실 출·퇴근이나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도 21.5%의 학생들이 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54%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의무로 규정돼 있어 연구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43%는 ‘시간이 적절히 규정돼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고 응답했다. 한 외국인 유학생은 “좁은 연구실에 강제로 있도록 하는 연구실 출퇴근 제도는 매우 비효율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수의 인격에 달린 대학원생 삶의 질

교수, 선후배 관계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에 의한 고충도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생들에게 ‘무보수 연구 지원’, ‘논문지도 방기’ 등의 유형을 제시하고 교수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적이 있는 항목을 고르도록 했다. 그 결과 해당 문항에 응한 1,112명 중 약 40.7%에 해당하는 453명의 대학원생이 한 가지 이상의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고 밝혔다.<표 1 참조>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석사 1학기 학생들을 제외하면 교수로부터 한 가지 이상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학생의 비율은 48.4%까지 올라갔다. 이들은 한 사람당 평균 2.5가지 종류의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학생들(26.5%)이 경험했다고 밝힌 ‘무보수 연구 지원’에 대해 학생들은 대학원생 업무의 경계가 모호함을 지적했다. 인문·사회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면서도 “이러한 애매함 때문에 대학원생이 여러 잡무를 맡는 일이 관행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행에 의해 학생들은 연구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많은 잡무에 시달리거나 교수의 사적인 업무까지 떠맡기도 했다. 공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여러 가지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수업을 따라가기는커녕 연구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밝혔다. 또 다른 대학원생은 “교수님의 이사나 컴퓨터 수리 등을 대학원생이 맡아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밖에 연구 및 논문지도 방기(14.2%), 연구비 및 장학금 유용 또는 유용 지시(8.0%), 신체·언어적 폭력 및 협박(6.6%), 고의적인 졸업 지연(4.1%)과 같은 심각한 사례를 경험했다는 학생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와 같이 부당한 일을 경험하더라도 학생들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부당한 일을 겪었다는 학생의 37.2%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고 ‘주변 지인에게 하소연하거나 상담을 받았다’는 학생은 54.4%였다. 교수에게 직접 문제제기하거나 제도적으로 대응했다는 학생은 5.3%에 그쳤다.

선후배와의 관계에서도 빈도는 덜하지만 위와 같은 부당한 사례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1,114명 중 299명(26.8%)은 선후배 사이에서도 한 가지 이상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실 내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응답자는 “대학원생은 연구실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 성희롱 및 성폭력 위험요소가 크지만 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교수나 선후배 사이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이유로는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65.5%), ‘원활하게 해결되지 못할 것이 자명해서’(60.2%), ‘학업이나 진로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55.8%), ‘공공연히 이뤄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41.6%) 등이 꼽혔다. 당사자에게 직접 문제제기를 했다고 답한 146명은 그 결과에 대해 62명(42.5%)이 ‘아무런 응답을 듣지 못했다’고 답했으며 48명(32.9%)은 ‘개인적인 사과를 받았다’고 말했다. 43명(29.5%)은 ‘왕따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제는 변화를 시작할 때

이처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원생의 학습·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대학원생들은 ‘국가 차원의 대학원 육성 정책’과 ‘교수의 절대적 권한 및 잘못된 인식 개선’, ‘학교 차원의 대학원 문제 대책 마련’ 등을 꼽으며 그중에서도 국가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41%).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들이 겪는 문제가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느끼는 데 따른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지원이 현재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전문대학원의 한 대학원생은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들도 함께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29%의 학생들은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의 절대적 권한과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수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일을 경험했다고 답한 학생들은 대부분 이를 1순위로 선택했다. 자연과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는 권위주의에 익숙한 교수들이 대학원생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수들이 예전과 다른 현재의 대학원생의 삶에 공감하며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3%의 학생들은 학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전문대학원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 사회의 특성상 대학원생이 직접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힘들다”며 “잘못된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규정이나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5%의 학생은 대학원생 스스로가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전문대학원의 한 대학원생은 “학생들 스스로가 교내 신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10%, "자치기구 적극 참여하겠다"

대학원생의 인권 보장을 위해 해외 대학에서 시도하고 있는 개선책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이에 동의하는 정도를 물었다. 이에 학생들은 주어진 개선책에 대부분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그래프 6 참조>

먼저 ‘대학원생 윤리 규정 및 권리 장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평균 4.1점의 동의를 얻었다. 자연과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 인권조례나 강령 등을 만들어 교수들에게 알리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 등 대학원생이 이용할 수 있는 고충처리 전담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평균 4.2점의 높은 동의를 얻었다. 공학계열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 학생들이 고민을 상담하고 건의사항을 제도에 반영할 수 있는 기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원 학생회 등 자치기구가 구성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학생들은 4.0점의 점수를 줬다. 대학원생 자치기구가 대학원생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뿐 아니라 대학원생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이어졌다. 전문대학원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 학생회를 구성해 연구실 내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학원생들이 공동체의식을 느끼도록 하는 통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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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자치기구가 구성되면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밝힌 학생도 10%(116명)가량 있었다. 62%의 학생들은 ‘적극적인 활동은 어렵지만 이름을 걸어두는 정도의 소극적인 참여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학생은 16%였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2%였다.<그래프 7 참조> 이 결과에 대해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들이 대학원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자치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자치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밝힌 학생들은 가장 큰 이유로 ‘시간의 부족함’을 꼽았다(69.3%). ‘교수님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졸업이나 진로에 불이익이 있을까봐’라는 응답도 35.2%를 차지했으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응답한 비율은 29.2%였다.<그래프 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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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하는 대학원생,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대학원생은 학생과 연구자, 노동자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는 한 대학원생의 말처럼 학생들은 대학원생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응답자들은 ‘대학원생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기본 권리를 보장하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높은 동의를 보인 가운데(4.1점) 일부 학생들은 최저임금이나 최장 근무시간 규정, TA·RA 근무에 대한 근무수칙 등을 마련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법인화를 통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학교가 대학원생의 여건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 대학원생은 “연구중심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구호가 대학원생을 더 쥐어짜겠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모임(가칭)’에 참여하는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 문제는 워낙 복잡하고 층위가 다양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도 “경제적인 지원 등 대학원생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책과 함께 장기적 개선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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