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스누라이프 웹툰

언제나처럼 등굣길에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당신은 스누라이프에 들어가 베스트게시글을 훑어본다. 그리고는 웹툰게시판을 눌러 『권권규』에 새로운 학식 리뷰만화가 올라오지는 않았는지, ‘이유령’이 알콩달콩한 과CC 연애담을 털어놓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여느 포털 사이트의 웹툰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우리 학교 사람이 그린 만화에는 뭔가 특별한 공감대가 있다. 친근하고도 신선한 컨텐츠를 갖춘 이 공간은 스누라이프의 웹툰게시판이다.

◇스누라이프에 웬 웹툰?=스누라이프에 웹툰게시판이 개설된 것은 올해 4월의 일이지만, 웹툰 형태의 만화나 그림 연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9년에는 네이버 웹툰 ‘고시생툰’으로 유명한 ‘seri’ 작가의 『그림일기』가 업데이트돼 호응을 얻었고, 2012년에는 각기 다른 서울대생의 희로애락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오가닉올리브’ 작가의 『샤피스텔 사람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작년에는 고양이를 키우며 일어난 일들을 그린 ‘정별하’ 작가의 『냥모나이트』가 스누라이프에서 사랑받기도 했다. 스누라이프 웹툰게시판 담당자 윤덕형 씨(자유전공학부·11)는 “웹툰게시판을 만들기 전에 올라왔던 게시물들을 보고 게시판을 만들면 연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적을 볼 때 스누라이프는 만화를 일방적으로 올리는 곳이 아니라 유저와 소통하며 만화를 공유하는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올해 초에 올라오기 시작한 ‘우호~!’ 작가의 그림 연재가 그 증거였다. 독특하면서 간단한 그림과 함께 짧은 스토리텔링을 곁들인 그림들은 처음에는 ‘못 그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스라퍼(스누라이프 유저)’들은 발전해나가는 그림체에 주목하며 점점 좋은 반응을 보였고 그의 캐릭터 ‘쿰바짐바’에 애정을 표하는 팬도 늘어났다. 스누라이프 기획팀장 이윤복 씨(국어국문학과·10)는 “우호~! 작가의 게시물과 댓글들을 보고 스누라이프가 소통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로 공감하며 ‘칼답’을 주고받다=이렇게 생겨난 웹툰게시판엔 현재 약 30여개의 작품이 올라와 스라퍼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장르는 주로 일상생활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생활툰이다. 대학원생의 심심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원생툰』부터 초보 임상심리학자의 정신과 근무 일상을 다룬 『정신꽈 시간의 방』까지 다양한 일상이 진열돼 있다. 기대하며 먹는 학식의 치즈돈까스, 여학우가 많지 않은 301동, 학생들을 불러모으는 장터와 같은 모습은 서울대 학생들이 모인 스누라이프에서라면 누구나 무릎을 탁 칠 만한 디테일이다. 스누라이프 웹툰 독자인 김한나 씨(중어중문학과·12)는 “학교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웹툰을 보고 있으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다”며 공감을 표했다. 이윤복 씨는 “교내의 특정 사건이나 특정 장소를 언급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경험의 토대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 공감대를 얻기 쉽다”고 말했다.

독자와 작가 간의 소통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점도 학내 커뮤니티 기반 플랫폼의 매력이다. 최근 등장한 웹툰 전문 사이트는 댓글 기능이 없는 경우도 있고, 댓글을 달 수 있는 대형 포털의 경우 이용자 수가 많다 보니 작가가 독자의 피드백에 하나하나 반응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대에 속한 사람들만 보는 스누라이프에서는 소통이 비교적 쉬워 피드백이 빠르다. 우호~! 작가가 ‘학교를 자퇴하고 추워서 모닥불을 피우는 이누이트 소녀’를 그린 뒤 ‘소녀는 왜 자퇴한 거냐’며 묻는 댓글이 올라오자 불과 몇 시간만에 ‘옆 반의 여자아이와 싸웠기 때문이다’는 답글이 달렸다. 만약 작가가 다른 웹툰의 독자인 경우엔 직접 작품에 피드백을 남기기도 한다. ‘이유령’ 작가의 『씨쁠라이프』에 달달한 연애담을 다룬 최신화가 나왔을 때 『원생툰』의 작가는 커플을 질투하는 듯한 그림을 댓글로 올려 웃음을 자아냈다.

◇지속가능한 웹툰게시판을 위해=스누라이프의 웹툰게시판은 웹툰을 올리는 작가들이 프로 작가로 나아갈 것까지 내다봤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웹툰게시판이 생겨나게 된 계기에는 기성작가 워니(박종원)가 서울대 학생들과 함께 차린 웹툰 작가들의 소속사 격인 ‘워니프레임’이 배경에 있었다. 컨텐츠를 다양화하고자 했던 스누라이프와 서울대 출신의 신예작가를 발굴하고자 했던 워니프레임은 뜻을 모아 웹툰게시판을 만들었고 동시에 ‘2015 캠퍼스라이프 웹툰 공모전’을 열어 워니프레임에서 활동할 작가를 선발했다. 선발된 작가들은 회사로부터 일을 받아 스누라이프를 비롯한 타 사이트에 웹툰을 그리고 있다. 워니프레임에서 활동하는 이유령 작가는 “「한국일보」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아 웹툰 『씨쁠라이프』를 연재하기 시작해 스누라이프에도 같이 업로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게시판의 지속을 위해 컨텐츠를 풍부하게 하려는 사이트 차원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스누라이프에서는 납량특집의 계절을 맞아 ‘공포웹툰 공모전’을 열었다. 윤덕형 씨는 “방학 동안에도 사람들이 스누라이프에서 볼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공모전이 열리는 동안 웹툰게시판은 집에 가는 길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갑자기 사라진 순간의 섬뜩함, 자하연에 나타난다는 귀신,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서 분실물이 생기는 사건 등등의 괴담으로 가득찼다. 일상툰 위주였던 웹툰게시판에 장르물의 다양성이 더해진 것이다.

스누라이프에 웹툰을 올리는 작가들은 학업과 연재 사이에서 열심히 균형을 잡으며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학생으로서의 삶과 웹툰을 그리는 일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스누라이프의 웹툰은 뜸하게 연재되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은 언젠가 만화 그리는 일을 그만두고 학업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직장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소한 공간은 그리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재미를 준다. 이유령 작가는 “프로 만화가가 그린 웹툰만큼 흥미를 끌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누라이프의 웹툰게시판에도 더 많이 찾아와주시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우리와 같은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넣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의 ‘스랖질’은 조금 더 즐거워질 것이다.

 

현재 연재중인 스누라이프 웹툰을 소개한다

 

정신꽈 시간의 방 (도리도리토스)

▲ 사진제공: 도리도리토스

만화 『드래곤볼』에 ‘정신과 시간의 방’이 있다면 여기 한 초보 임상심리학자에게는 ‘정신꽈 시간의 방’이 있다. 지구에서의 하루가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일 년과 같아 『드래곤볼』의 수련 장소로 쓰이듯이, ‘정신꽈’에 있는 주인공 ‘나’도 심리를 공부하는 수련생으로 하루하루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스라퍼들은 수련생 ‘나’의 일상을 따라가다보면 다소 멀게 느껴질법한 임상심리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 직장은 이래서 괜찮지만 저래서 별로더라고 품평하는 글은 스누라이프에 종종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귀여운 그림체로 마음까지 사로잡는 웹툰은 처음이다. 직업인으로 발돋움하는 한 서울대인의 모습과, 인간을 마주하는 심리학자의 모습 모두가 산뜻하게 드러나는 이 만화만의 재미란. ‘정신과 환자가 타인을 괴롭히는 것도 병의 문제지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고유리 기자 yoori0805@snu.kr

 

현자툰 (범소유상 개시허망)

▲ 사진제공: 범소유상 개시허망

삐뚤삐뚤한 글씨와 엉성한 그림을 보고 있자면 그 위로 어릴적 추억이 스친다. 초등학교 다닐 적 유행했던 만화를 보고 따라 그렸던 책상 위 낙서와 꼭 닮아있는 탓이다. 귀농한 작가가 그려내는 시골 풍경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많은데 그림 실력이 없네요.” 작가는 자신의 그림 실력을 아쉬워하지만 현자툰의 서툰 그림체는 오히려 매력 포인트다.

‘현자’툰을 표방하는 이 만화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내용은 물론 귀농생활과 어릴적 이야기까지 작지만 다채로운 소재가 가득하다. 시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15분을 차로 달리는 이야기나 예초기를 다루며 겪는 고충 등이 성글지만 정성스런 그림체로 짧게 그려진다. 소소하게 묘사된 그의 일상을 보다 보면 허한 마음속에 불씨 한 톨이 옮겨온 듯한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

조수지 기자 s4kribb@snu.kr

 

가장 보통의 존재 (clearfile)

▲ 사진제공: clearlife

“mom...$...sorry...”

“♂=99.9% yadong”

위의 문장을 이해했다면 당신은 웹툰 『가장 보통의 존재』를 만날 준비가 됐다. 이 웹툰에는 초등 기초 영단어와 ‘콩글리쉬’가 드문드문 보일 뿐 별다른 대사가 없다. 웹툰의 두 주인공은 연필로 죽죽 그은 생머리의 여자 취준생과 까까머리의 남자 복학생이다. 대형 강의실에서 스치듯 만난 두 사람이 어색하게 번호를 교환한 뒤, 여자는 SSAT 문제집을 덮고 카톡을 기다리며 남자는 스랖 ‘샤랑방’에서 소개팅 장소를 물색한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첫 데이트! 대화 소재 고갈에 빠져 절망하는 남자와 하필 오늘 얼굴에 난 뾰루지에 심통한 여자. 이제 막 시작한 이 갑남을녀의 연애 이야기에 설레는 이유는 남일 같지 않아서다. 가장 특별한 연애를 하고 싶은 가장 보통의 존재들은 이 웹툰에 빠져보자. 회를 거듭할수록 느는 작가의 그림 실력과 함께 당신의 그림 이해력도 쑥쑥 자란다.

권혜빈 기자 snu120724@snu.kr

 

씨쁠라이프 (이유령)

▲ 사진제공: 이유령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일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상의 한 조각을 들춰보며 웃기도 하고, 그 사람만이 경험한 특별한 한 조각에 신기해하기도 한다. 씨쁠라이프에서 보여주는 공대생 메밀의 일상 역시 그렇다. 과CC 후배 ‘보리’와의 연애 이야기를 시시콜콜 풀어놓는 그녀는 우리가 잘 모르는 ‘여자 공대생’으로 사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메밀은 비밀연애를 하다 버스에서 손잡은 모습을 들켜 수줍어하기도 하고, 붐비는 여자화장실을 어색해하는 ‘공대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과생은 윗공대의 삶이 의외로 다르지 않은 점에 공감하고, 공대생은 작가의 ‘염장질’에 분노하면서도 공대생이 사는 모습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씨쁠라이프는 포털사이트의 웹툰만큼 정교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스라퍼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흔하다면 흔하지만 알콩달콩하고,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메밀의 일상이 왜 겨우 ‘씨쁠’라이프인지, 우리는 계속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고유리 기자 yoori0805@snu.kr

 

권권규 (말란스키)

▲ 사진제공: 말란스키

공군 복무 시절 즐겨봤던 『씨큐』라는 웹툰이 있었다. 현역 공군병인 작가가 근무지에서 일어난 소박한 에피소드를 매주 연재했던 이 웹툰을 모르는 병사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이 만화가 그토록 사랑받았던 이유는 작품에 담긴 것이 지금 군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의 일상이자 곧 독자들의 어슷비슷한 군대 일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씨큐』의 작가가 제대 후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웹툰을 연재한다면? 복학생이 된 작가 ‘통나무’가 단조로운 캠퍼스 라이프에서 기발한 관찰과 엉뚱한 공상을 버무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한다. 예컨대 캠퍼스가 한 건물로 통합되는 상상을 펼치거나 평범한 학식에 대한 쓸데없이 진지한 비평을 시도하는 식이다. 학식객 2화에서는 동원관 잔치국수를 세심하게 평가하다가 ‘급’ 미식 만화를 그리는 자신에 대한 회의로 넘어가는 초월적 결말을 보여줬다. 다음 편에 나올 학식만화가 몹시 기대된다.

이설 기자 fancylife@snu.kr

 

원생툰

▲ 사진제공: 원생툰 작가

뾰족한 매부리코와 툭 튀어나온 광대를 가진 안경잡이 대학원생 ‘김원생’을 모르는 스라퍼도 있을까? 변변찮은 외모와 늘 한결같은 체크남방 차림의 그는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채 30세의 나이로 그만 관악캠퍼스의 화석이 돼버렸다. ‘빼박’ 대학원생의 외형을 갖춘 덕분에 그는 장터에서도, 총학 선거 부스에서도 외면당한다. 원생툰은 학부생들이 바글거리는 캠퍼스에서 소외된 한 평범한 대학원생의 일상을 코믹하고도 찡하게 그려낸다.

필체는 간결하지만 그 어느 화려한 작화보다 강렬하며, 대상은 희화화됐지만 소외된 우리 모두를 향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원생에게도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던 학부생 시절이 있었으며 지금 즐거워 보이는 후배들도 후에 심심한 일상을 사는 선배가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소외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김원생의 못난 점에는 어딘가 정감 가는 구석이 있다.

정서영 문화부장 infinity9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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